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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 성인



주보 성인 – 이윤일 요한

우리 본당의 주보 성인 성 이윤일 요한은 1823년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나, 1867년 1월 21일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당한 성인으로 시복은 1968년 10월 6일에 주어ㅤㅈㅕㅅ다. 성인의 생애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윤일 성인은 충청도 홍주 지방의 부유한 농가의 들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벌써 여러대째 천주교회를 신앙하는 충실한 신앙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항상 온화하고 선량한 성인은 어려서부터 벌써 부지런하였고 정결하게 덕을 지키며 이웃 사랑과 봉사에 깊은 믿음으로 대하였다. 특히 예목회 공소회장으로 임명 되면서는 더욱 열심히 전교하여 많은 사람들을 입교시키었다. 많은 살마들은 비록 천주교를 반대하던 사람들이라해도 그의 온화한 인품에서 풍기는 권면의 음성에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였다.1865년에는 그의 큰 아들 시몬이 체포되어 공주 감영으로 이수되엇다가, 12월에 순교하였다.

아들의 순교함을 들은 이 성인은 “언젠가는 때가 오면 주님을 증거하고 치명 하여야 할 것이다” 라고 말하여 가족들의 신심을 더욱 돋구었다.

아들이 순교한 후 그는 가족과 함께 경상도 상주 ‘갈골’로 옮겨와 살았다. 효성이 지극한 그는 아버지에게 깊은 효성을 드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여우목’이라는 산골로 이사하였다. 그는 모든 마을 사람들을 입교 시킨 후 회장 소임을 수행하였다. 이때에 김예기, 김인기 형제들과 왕래하며 교우들의 신심을 복돋우엇다.

병인년 가을 페룽 권 신부와 깔대 강 신부의 조선 탈출 이후 모든 신부를 잃은 이곳 교우들은 오로지 이윤일 성인만을 믿고 그의 말대로 행하였다.

그해 10월 문경 여우목 주변의 30여호의 교우들이 모두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문경 관아로 붙잡혀 갔다. 문경 관아에서 심문을 마친 이윤일 회장은 곳곳에서 잡혀온 100여면의 교우들과 함께 목사가 있는 상주로 이수되었다.

많은 문초와 곤장을 받고도 배교를 요구하는 목사의 호령에 성인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말하였다. “제가 믿는 천주교는 결코 사악스러운 종교가 아닙니다. 천주님은 이 우주 자연만물을 창조하시고, 기르시는 대 주재자로 임금님보다 더 큰 어버이십니다. 이것은 세상의 임금님과 어버이를 배반하는 것보다도 더 큰 죄입니다.” 화가 난 목사는 “저 놈의 입에서 배교 한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매우 주리를 틀어라” 하였다.


그러나 그 형벌을 신앙심으로 이겨낸 이 후로 그에게는 더 이상 형벌도 없었다. 그 이후 성인은 대구 감영으로 김예기, 김인기 형제와 함께 이수되었다. 조정에서 참수하라는 영이 내리자, 이들 세명은 형장으로 끌려나갔다. 감사는 형장인 대구 관덕정에 이르러 세 사람 앞에 각기 음식 한 상씩을 차려 주며 마지막으로 먹으라 하였다. 이 때 김 회장 형제가 그것을 먹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울자, 이윤일 성인은 태연히 앉아 말하기를, “천주께서 먹으라 하신 음식을 먹지 않고 우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울지말고 기쁘게 먹읍시다” 하며 그 형제들에게 권하였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사형수의 행동이라기 보다는 평상시 음식을 먹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 태연스러운 모습을 보고 구경꾼은 물론 감사까지도 그의 죽음을 초월한 행위에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따. 음식을 다 먹은 뒤, 그는 사형터로 나아가 나졸에게 말목 넷을 땅에 박으라고 시키었다. 그리고는 사지를 잡혀주고 나무토막을 목에 괴고 땅에 엎드리며 사지를 매라고 하였다. 이렇게 형장의 준비를 다 마치고 나서 그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엽전 닷 돈이 나오자, 그것을 나졸에게 주며, ” 이 돈은 이제 내게는 쓸데가 없으니 당신이나 쓰시오. 그리고 첫칼에 내 목을 베어 주시오.”


이렇게 말을 하고는 안온한 빛으로 눈을 감고 회자수의 칼을 받았다. 그의 목은 땅에 떨어졌지만 영혼은 천상에 올라가, 마침내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때는 1866년 음력 12월 16일 (양력 1867년 1월 21일)이었으며,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그의 시신은 그 날 밤에 교우들에 의하여 형장 근처에 임시 묻혔다가, 3년 후에 날뫼(현 대구 비산동) 뒷산으로 옮겨 안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