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 성 이윤일 요한 천주교회

교우분들 이야기 제13편 김진숙(로사) 자매님 산티아고 가는길

2011년 11월 20일

비와 함께 순례를, 아름다운 부르고스 대성당 저녁 미사

SANTO DOMINGO DE LA CALZADA → BELORADO 23KM

8시쯤 나와 마을의 중심인 마요르 거리를 잠시 돌아 보았다. 불이 꺼진 여러 상점에는 닭의
전설이 내려오는 마을답게 닭의 형상이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다
. 카미노 때문에 만들어진 이
마을은 순례자들에게 모든 편의 시설을 제공해 주며 여러 가지 행사와 산토 도밍고 성인을
기리는 축제가 항상 열리고 있으며 닭이 작은 북과 함께 행진하는 축제도 있다
.

마을을 빠져 나와 카미노 표시를 따라 세 시간쯤 걸어 그라뇽 (Granon) 으로 들어섰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 가는 길에 지나는 라 라오하 주의 마지막 마을이었다. 길가 의자에 앉아있던 프랑스
여인이 우리를 보더니 반색을 했다
. 기타만 들고 다니는 그녀는 첫날부터 같이 출발해서 오며
가며 잘도 부딪쳤다
. 인사를 나누고 카메라용 배터리를 사려고 상점을 찾았다. 한눈에
바라보이는 거리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며 가게를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 밖에서 보면 전연
상점이라고 할 수 없는 곳을 겨우 찾아 들어가니 정말 몇 가지 안 되는물건을놓고팔고있었다
.
물건값이 다른 곳보다 두 배 정도 비쌌지만 필요한 물건들을 사가지고 나왔다. 지나온 마을들
중에서 제일 낙후된 시골 동네 같았다
.

성당을 지나가다 당연히 문이 닫혀 있는 줄 알고 사진만 찍으려는데 노인 한 분이 오시더니
열려 있는 성당 안으로 안내해 주셨다
. 아마 일요일이어서인 것 같았다. 성당 안의 여러 성화와
조각 등 여러 가지를 열심히 설명을 해주시는데 알아들을 수 없어서 정말 답답했다
. 아침 미사가
끝난 것인지 저녁 미사가 있는지 촛불봉헌대도없고도저히감도잡을수가없었다
.오랜세월의
때가 낀 회색의 육중한 바깥 모습과는 달리 성당내의 모습은 밝고 화려하며 제대 앞에 성모
마리아상이 모셔져 있었다
.

세 시간 정도를 더 걸어 부르고스 (Burgos) 주가 시작되는 첫 번째 마을이고 카미노 때문에
발달한 레데시아 델 까미노
(Redecilla del Camino) 를 지났다. 오늘의 목적지인
벨로라도
(Belorado) 까지 3km를 남겨 놓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순례자들을 자주 고생하게 했다는 비를 우리는 운 좋게도 잘 피해 왔다. 그러나 이
여정에서 마지막 보는 아름다운 평원길을 혼자가 아닌 비와 함께 걸었다는 게 이번 순례의 길을
더욱더 기억나게 할 것 같아 여태까지 배낭 속에 넣고 다니던 비옷을 천천히 꺼내 입었다
. 순례
첫날 배낭이 너무 무겁다며 제일 먼저 비옷을 버렸던 언니는 큰 비닐 봉지를 대강 걸쳤다
. 비가
흩뿌리는 평원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 모든 것이 비에 젖는 벌판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도

차분하게 비에 젖어 내렸다. 나도 이 벌판과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또
모든 것이 막힘 없이 바람처럼 지나가는 곳
…. 나는 왜 길 위에서 이렇게 헤매고 있었는가, 내
순례의 의문이 한가닥 풀리는 기분이었다
. 나는 그렇게 남은 길을 천천히, 천천히 걸어갔다.

입구부터 만국기가 날리고 있는 언덕 위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끝나가고 있었다. 산
밑에 자리 잡은 벨로라도 마을은 로마 시대에 형성되어 아홉 개의 성당과 두 개의 병원이 있을
만큼 번성했던 도시였다
. 중세의 순례자들이 심신의 휴식을 위해 반드시 쉬어 간 곳이라는데
지금은 쇠락한 작은 마을처럼 보였다
.

크레덴시알에 도장을 받고 알베르게에 딸린 식당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있는데 먼저 도착한
차정임과 오한나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 서로의 일정이 달라 우리는 여기서 완전히 헤어져야
했다
. 나중에 서로 꼭 연락하자며 이 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서로를 포옹하면서 문을 나서는데
스위스인 전직 교수와 독일 여인이 다가왔다
. 우리는 그들과도 포옹하며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하며 헤어졌다
.

우리가 계획한 보름간의 순례의 길 일정 중에서 이제 걷는 것은 끝났다. 하루도 낙오 없이
걸었지만 많이 아쉽고 서운했다
. 발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언니도 생각보다 허전하다고 했다.

내일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오늘 안으로 부르고스까지 가야 했다. 집에서 세운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지금 부르고스에 있어야 했다
. 매일 늦게 출발하고 걸음이 늦은 언니를
수시로 기다리다 보니 하루에
2~3km씩 누적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한 구간인 부르고스까지는
버스로 가야 했다
.

스페인에서 손에 꼽히는 대도시인 부르고스에 오후 6시 30분쯤 도착했다. 부르고스 대성당
바로 앞 호텔에
70유로를 주고 들어가 배낭을 풀어 놓고 일요일 저녁 8시 미사를 보기 위해
나왔다
.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대성당 앞에 서니 너무나 아름다워서 넋을 잃을 정도였다.성당외부와
첨탑 위에 섬세하게 장식된 무수히 많은 조각들
,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 성당은
1221년 페르난도 3세의 명으로 짓기 시작해 16세기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한다. 두 개의 탑의
높이가
84m. 오래오래 기억할 만한 가치 있는 한 폭의 찬란한 그림이었다. 이 아름다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성체를 모시는 기쁨 또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

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그동안 만났던 순례자들이 서로 알아보고 반가워 했다. 순례길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다가 생각하지 않았던 스페인의 중국 식당에 들어갔다
.
이 음식은 내가 먹어 본 음식 중 제일 맛이 없었다. 그것마저도 내게는 조금이라도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이리라
.

2011년 11월 21일
완주하리라 다짐하며

BURGOS

오늘도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이 순례의 길에서 제일 고생스러웠던 것은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이었다
. 종일 걷고 피곤해서 눕자마자 곯아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있는 것 같았다
.

일찍 준비하고 아침 7시부터문을여는호텔식당에제일먼저도착해서잘차려진아침을기분
좋게 먹고 다시 성당을 찾았다
. 아침에 본 부르고스 대성당도 역시 아름다웠다. 성당 안내소에서
크레덴시알에 도장을 받고 일반인은
5유로 하는 입장료를 2.5유로 (순례자) 를 내고 성당 내부를
구경하였다
. 성당 안으로 들어가다 너무나 화려한 성당 안의 모습에 잠시 주춤해졌다. 이렇게
화려하게 금빛으로 치장하다니 순간 경건한 마음보다는 거부감이 앞섰다
. 하지만 그 느낌도
잠시
, 그당시 황금기의 기독교 문화가 지금까지 우리 신앙인들에게 끼친 영향을 생각하니 다시
숙연해졌다
. 촛불 봉헌을 하고 작은 채플에 앉아 묵상과 기도를 하고 나오는데 어젯밤 미사가
있었던 성당에서 열 명의 신부님들이 미사를 집전하고 계시는 모습이 너무나 경건하고 아름다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

성당 안을 관람하고 성화를 감상하고 옛 성인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공항을 가기 위해 아쉬운
마음으로 대성당을 나왔다
. 비행기 출발 시간은 오후 6시 30분이었다.

시간이 여유로워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고 부르고스 버스 터미널에 오전 11시쯤 도착하니
들어오고 나가는 버스가 꽤 많았다
. 서울의 고속터미널쯤 되는 것 같았다. 버스 창가에 기대어
앉아 잠깐씩 졸다가 창 밖을 보면 여태껏 걸었던 듯한 들판에 길들이 이어지고 작은 마을들이
나타나서 나는 아직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 버스가 마을을 지날 때마다 나는
순례의 길 표시인 파란 바탕에 노란 조개껍질 문양을 습관적으로 찾으며
800km 중 260km를
걸었으니 내년
10월쯤 나머지 길을 완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을마다 지나쳐온 아름다운
성당들
, 유구하고 찬란했던 스페인의 역사를 말하는 중세풍의 건물들, 평온한 마을들과 평화로운
시골 사람들의 표정
, 따스하고 푸근했던 날씨, 단풍 든 산길, 드넓은 포도밭, 끝없는 들판.
감상에만 젖어 걸은 것 같아 너무 아쉽고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년에는 아쉬웠던 모든 점들을
철저히 보완해서 남은 여정을 꼭 완주하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

오후 3시 15분 필라델피아 공항에 도착한 언니와 나는 공항 검색을 마치고 나니 다음 비행기
갈아탈 수 있는 시간까지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 우리는 공항 내 식당에서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동안의 에피소드와 해프닝을 이야기하며 마주보고 웃었다
. 언니는 덕분에 잘
다녀왔다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포옹을 했다
. 나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언니는 힘들게 인내하며.
쉽지 않았지만 좋은 체험이었다.

“내년 10월 완주해” 하는 내 제안에 언니는 “그래 완주하자” 하고 선뜻 응했다. 언니는 워싱턴
D.C.로 나는 샬롯으로 향했다. 공항에 내리니 이 순례의 길을 마련해 준 고맙고 소중한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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