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분들 이야기 제 24편 김진숙(로사) 자매님 산티아고 가는길

알베르게 근처 카페에서 크루아상과 카페 콘 레체로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포르토마린
(Portomarin) 을 거쳐 벤타스 데 나론 (Ventas de Naron) 이었다.

포르토마린 도시까지 다시 한없는 내리막오르막길, 좁은 언덕길, 아스팔트길을 지났다. 오늘
지나는 길들은 카미노를 상징하는 조개껍질 문양과 순례자의 조형물들이 별로 없어 노란
화살표만을 열심히 찾아야 했다
. 서너 군데 헷갈리는 갈림길에서 앞서 가던 한국 학생 베드로가
열심히 노란 화살표를 확인하며 뒤따라 가는 사람들을 안내했다
.

군데군데 피어 있는 노랑, 보라, 빨강, 갖가지 야생화들이 기분을 밝게 해 주고 피로를
덜어주었다
. 4계절이 들쑥날쑥 함께 나타나는 갈리시아 지방이었다. 아침에 찬란한 햇살과
더불어 상쾌한 기분으로 바라보는 꽃들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만 몸이 지친
오후에는 그 아름다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사물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이 다분히 몸의
건강 상태와 비례하는 것 같았다
.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가장 평범한 진리가 가슴
깊이 다가왔다
. 하지만 같은 카미노를 걸으면서도 생각이나 감정들은 각자의 상황이나 여건,
경험에 의해서 다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아침에는 위대했던 것들이 오후에는 보잘것없어
보인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 생각나는 아침이었다
.

오후 130분쯤 포르토마린에 접어들며 강폭이 넓은 미노 (Mino) 강의 돌다리를 건넜다. 마을의
중심가로 연결되는 가파르고 긴 돌계단 위로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니 강을 낀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마을이 한눈에 보였다
. 홍수로 인해 저수지 물에 잠겼던 마을을 1960년도에 재건한
마을이었다
. 언덕 위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성당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성 니콜라스 요새
성당
(Iglesia Fortaleza de San Nicolas) 은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이 12세기 말에 설립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망루는 그당시엔 요새로 사용되었다
.

시에스타 시간이라 상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바오로님과 베드로 학생은 이 마을에서
쉬었다 가겠다며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 스위스의 앤과 독일 여자와 함께 광장에 있는 카페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 작년 순례의 길 출발지인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받기 시작한 크레덴시알이
포화상태라 스탬프 찍을 자리가 없어서
1.50유로를 주고 새로 크레덴시알을 구입했다.

앞으로 12km를 더 걸어야 하는 목적지를 향해 다시 노란 화살표를 따라 산길을 계속 올라갔다.
지나는 마을마다 보이는 성당 안에는 거의 공동묘지가 있었다. 몬테 토레스 (Monte Torros)
언덕까지 오르는 산길에서 곧게 뻗은 유칼립투스 나무와 소나무에서 풍기는 향기가 산뜻했다.
자연의 향기가 내 안에 가득 찬 것 같았다. 먼저 도착해 언덕 위의 한 카페에서 쉬고 있던
스위스의 앤과 체리 주스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 4개국 말이 공용어인 스위스에서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프랑스어도 구사하는 앤과는 카미노에서의 공감 때문일까 서로 의사가 잘
통했다
. 수도인 베른 (Bern) 에 살며 정부에서 일한다는 그녀는 단정하고 예의 바른 50대 중반
여성이었다
. 스위스는 국민의 절반이 가톨릭 신자이며 관공서에서 발행되는 모든 공공문서는 네
공용어로 동시에 발행된다고 했다
.

오늘의 목적지 벤타스 데 나론 (Ventas de Naron) 을 가자면 오스피탈 데 라 크루즈 (Hospital de la
Cruz)
를 지나야 하는데 앞서가며 어딘가에서 길을 잘못 들은 앤을 따라가다 한 시간 반정도
덤으로 더 걸으니 지치고 녹초가 된 몸에 한층 피로감이 더했다
. 왔던 길을 다시 돌아 나오며
갈래길에서 돌 비석과 길가에 분명히 표시된 노란 화살표와 조개 문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무심히 앤을 따라가면서 지나친 것이었다. 매일 내가 하던 일을 등한시 하고 나의 몫으로 주어진
일을 남에게 의존한 채 무작정 따라간 자신을 자책했다
.

오늘 몸을 쉴 공간은 어떤 곳일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지나쳤던 갈래 길에서다시미지의길로
들어섰다
.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내 안에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지난 잘못에
집착하지 않고 앞만 보

20121030

기쁨과 아쉬움의 교차, 카미노를 걸으며 나는 무엇을 얻고 싶었나

VENTAS DE NARON MELIDE 23KM

산 너머 하늘에 서서히 찬란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알베르게에서 5분 정도에 있는 시골 마을
카페에 들어갔다
. 이 산속에 두 개의 알베르게가 있다는데 몇 명의 순례자들이 벌써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 카미노가 산속 마을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에 가까울수록 기쁨과 성취감으로 가득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허전하고
아쉽다
. 고달프고 외로웠지만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길들이 그새 그리워지고, 얼마 남지 않은
순례의 길이 점점 아쉬워졌다
. 오랜 세월이 지난다 해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테지만
철저히 혼자의 몫으로 끝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

카미노의 화살표와 조개껍질의 문양과 십자가가 쉬지 않고 가는 길을 인도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평소보다 천천히 걸으며 낮
12시쯤 팔라스 데 레이 (Palas de Reid) 에 도착했다. 켈트족의
흔적과 시내에서 떨어진 루고 라는 곳에 로마인이 세운 성벽이 완전히 보존되어 있는
마을이었다
. 팔라스 데 레이는 오래 전에 사라진 왕의 궁전에 귀환을 기다리며라는 뜻이
있었다
.

비교적 큰 도시라 열려 있는 성 티루소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 de S. Tirso) 에서 촛불 헌금을
하며 묵상을 하고 나왔다
. 점심 식사를 끝낸 후 다시 길을 떠났다. 제법 큰마을을벗어나는곳에
카미노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은 남녀 한 쌍의 동상이 서 있었다
. 카미노는 항상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었다
.

다시 숲길과 비스듬한 내리막 흙길로 들어섰다. 자그마한 카사노바 (Casanova) 를 지나
레보레이로
(Leboreiro) 를 둘러보면서 이 마을에만 남아있는 까베세이로 (Cabeceiro) 라 불리는 식량
창고 구조물을 카메라에 담았다
. 지금껏 보아왔던 식량 창고와는 다르게 버드나무로 지어진 고깔
모자 모양이었다
.

다시 푸렐로스 (Furelos) 를 거쳐 이끼로 뒤덮인 아치형 돌다리를 건너 오늘의 목적지인 제법 큰
멜리데
(Melide) 로 들어섰다. 5유로를 받는 공립 알베르게에서 크레덴시알에 스탬프를 받은 다음

담요 한 장을 받아 들고 배정받은 2층으로 올라갔다. 넓은 방에는 이미 자리 잡은 순례자들과
지금 도착하고 있는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 여기까지 오면서 순례자들이 제일 많은 알베르게였다.

침대에 배낭을 내려놓고 2층 입구 휴게실 의자에 앉아 들락날락하는 순례자들을 바라보며 잠시
혼자 생각에 빠져들었다
. 순례자들은 왜 이 고생스러운 카미노를 걷고 있으며, 이 고통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지
, 무엇이 이들을 이곳까지 오게 했는지, 또 카미노를 그토록 걷고 싶어
한 내 열망은 무엇이었는지
….

저녁 6시쯤 부지런히 샤워를 하고 오늘 하루의 뒷정리와 내일 아침에 떠날 준비를 대충 끝낸
다음
7시 토요 미사가 있는 성당을 찾아갔다. 몇 사람이 앉아서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 곧 저녁 7시 미사가 시작되었다. 나이 드신 신부님 두 분이 집전하시는 미사는 역시
엄숙하고 경건했다
. 오늘도 무사히 걷게 해 주시고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건강을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체를 모시고 성당을 나왔다
.

멜리데 마을도 스페인에서 문어 (뽈보) 요리로 유명한 곳이었다. 광장 근처의 레스토랑을
기웃거리는 근영 학생을 우연히 다시 만나 그를 데리고 유명하다는 뽈보 식당을 찾아갔다
. 방금
삶은 문어를 먹기 좋게 썰어 스페인 고춧가루에 올리브 오일을 뿌린 문어는 싱싱하고 맛이
좋았다
. 거기에 토속주를 곁들여 먹는 즐거움을 무엇에 비하랴…. 문어를 즐겨 먹지 않는 유럽
순례자들은 신기한 듯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

오랜만에 불빛이 화려한 밤거리의 멜리데 시내를 돌아보고 좁은 골목 끝에 있는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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