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분들 이야기 제21 편 김진숙(로사) 자매님 산티아고 가는길

20121024
시험에 들다

PONFERRADA VILLAFRANCA DEL BIERZO 24KM

몸살약과 목 감기약을 한꺼번에 먹고 잔 탓인지 일어나보니 9시였다. 어제 얼마나 무서웠는지
악몽을 다 꾸었다
. 서둘러 어젯밤 빨아 널어놓은 옷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매일 알베르게를
떠나기 전
, 혹시 잃어버린 물건이 없나 둘러보고 또 돌아보고 살펴보았지만 그래도 두고 온
물건들이 있었다
. 양말도 네 켤레에서 두 켤레로 줄었다. 창 밖을 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 앓아 눕지 않고 정신력으로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하며 오랜만에
전신 거울 앞에서 비옷을 둘러쓰고 배낭을 단단히 여민 모습을 비장한 느낌으로 바라보았다
.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거리로 나왔다. 9시가 지나야 인기척을 내며 서서히 일어나는 스페인
마을들
. 순례자한테는 늦은 시간이라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구 시가지에 들어서자
폰페라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템플 기사단 성
(Castillo de los Templarios) 이 나타났다. 문이
닫혀 있는데다가 비가 와 을씨년스럽기도 해서 비스듬한 언덕 위에 위치한 거대한 성에 올라가
볼 수가 없었다
. 외벽과 내성 모두 웅장하고 멋진 위용을 품고 있었다.

산악 지역으로 들어가는 순례자들을 돕기 위해 페르란도 2세가 1178년에 건립한 국가
유적지이다
. 중세에 석탄과 철 광산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도시 폰페라다도 순례자를 위한
상징부터 템플 기사단의 유서가 깊은 역사적인 곳이다
. 성벽에 있는 12개의 탑은 별자리를
의미한다고 하고 기사들은 세 겹의 성벽에서 세 번의 맹세를 했다고 한다
.

템플 기사단은 11199명의 프랑스 수도사들로 결성된 종교 기사단으로 시작되었다.
예루살렘의 솔로몬 신전 터에 본부를 두고 성당과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을 짓고 순례자들을
이슬람교도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1314년에 해체되었다.

성 맞은편에는 17세기 바로크 형식의 건축물인 성 안드레스 (Iglesia de San Andres) 성당이
보였고
, 골목길을 나오니 성모광장과 중세의 건축물인 엔시나 바실리카 성모 성당 (Basillica de la
Encina)
이 있었다. 성당 문은 닫혀 있었고 광장 한 켠 성모상 옆에는 떡갈나무가 서 있었다.
엔시나는 떡갈나무라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기사가 숲 속에서 신비한 광채를 내는 떡갈나무
구멍에 성모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성모상을 위해 훌륭한 성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 그 후
엔시나의 성모가 이 지역의 수호성인이 되었다고 한다
.

복잡한 도시에서는 노란 화살표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4~5명의 스페인 순례자들이
몰려가며 같이 가자는 손짓을 했다
. 차도에서 보호도 해주며 많은 친절을 베풀어 주는 그들과
도시를 빠져 나왔다
. 적막하고 썰렁한 마을 입구에서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의 좁은
오솔길은 노란 화살표이고 왼쪽의 흙길은 비석에 순례자 상징인 조개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

비가 그쳐 비옷을 벗으며 어느 길이 맞는지 망설이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고 큼지막한
개 두 마리가 다가왔다
. 나는 개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5~6분 동안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동안
지나친 여러 마을에서 개들을 자주 봤었기때문에양순한건알고있었지만
,한번은인적이없는
어느 마을에서 개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다 개들이 먹을 것을 주는 줄 알았는지 한참을 따라와
혼이 난 적이 있었다
. 잠시 후에 나타난 친절한 개 주인인 아저씨의 손짓에 따라 노란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오른쪽 길로 접어들 수있었다
.개들이나에게다가오지않았다면어쩌면난더오래
길을 찾느라 헤맸을지 모르겠다
. 혼자 걸으니 자주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딪쳤다. 또 그
어려움으로 인해 새로운 길이 생겼다
. 그럴 때마다 한 가지씩 카미노에 적응하는 지혜가
쌓여갔다
. 어쩌면 우리 삶의 지혜도 그와 같은 것이리라…. 이 시간까지 별일 없이 순례의 길을
가고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계속 이어졌다. 수국이 싱싱하고 탐스럽게 피어있는
캄포나라야
(Camponaraya) 의 카페에서 시카고에서 온 미국 중년 부부를 만났다. 서로가 애틋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예사로운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 고등학교 때 다정했던
동창으로 각자 결혼 생활을 하다 두 사람 다 혼자가 되어 카미노에서다시예전의사랑을키우며
함께 걸어간다고 했다
. 진실하게 보이는 남자는 걸으면서 계속 애정 어린 눈으로 조그만 배낭을
메고 가는 여자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 두사람의모습을보니이곳에오기전두번이나보았던
‘The way’ 라는 영화가 떠 올랐다. 카미노에 대한 영화로 각자가 살아온 인생 철학이나 카미노를
걷는 목적은 다르지만 서로 소통하고 느끼며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내용의 영화였다
. 나는
두 연인 사이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카미노를 걸으며 두 사람의 사랑이 더욱 굳건해지기를
바란다며 앞장서 갔다
.

포도를 수확하는 조각상을 감상하며 모든 순례자들이 들려서 시음할 수 있는 와인 공장을
지났다
. 눈앞에 비에르소 와인의 주산지인 카카벨로스 (Cacabelos) 의 포도밭이 광활하게
전개되었다
. 수확이 끝난 가지에 몇몇 포도송이들이 아직도 방울방울 달려 있었다.

산티아고가 220km가 남았다는 사인을 지나 피어로스 (Pieros) 로 들어서는데 한국 아가씨가
카페에 카메라를 두고 나왔다며 황급히 오던 길을 되돌아 갔다
. 카페 카운터에서 분명히
카메라가 든 까만 가방을 보았던 기억에 내 마음이 더 안타까웠다
. 오늘의 목적지 비야프란카 델
비에르조
(Villafranca del Bierzo) 5km 정도 남기고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돌돌 말아 주머니에
넣어 배낭 끝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던 비옷을 뒤집어 쓰고 두 시간쯤 걸어 드디어 비에르조
와인의 주산지인 비야프란카 마을로 들어섰다
. 비스듬한 언덕으로 계속 광활한 포도밭이
이어졌다
. 물기를 흠뻑 머금은 포도밭에서 나는 냄새가 상큼했다.

이 마을은 14세기는 페스트, 17세기에는 프랑스가 침입하여 폐허가 되었던 곳이다. 그 후
프랑스 상인들이 모여들면서 산 아래에 지금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 산속에 폭 파묻힌 그림같이
예쁜 마을이었다
.

젊은 사람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는 아베 페닉스 (Ave Fenix)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알베르게는 주인이 밤이면 순례자들을 숲 속으로 데리고 가 고대 갈리시아 미녀들이 즐겨 마신
음료를 만들어 준다는 의식이 있다고 들었는데 오늘 밤은 조용했다
. 살아있는 순례의 길 전통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

알베르게 바로 옆에 산티아고 성당 (lglesia de Santiago) 이 있었는데 역시 문이 닫혀 있었다. 몸이
아픈 순례자가 이 성당의 문을 통과하면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것과 같은 은혜를 입는다는
전설이 있는 성당이었다
. 성 야고보의 날인 725일이 일요일인 성스러운 해를 제외하고는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

자원봉사자의 친절로 계속 뜨거운 티를 마시며 갈아입을 옷이 변변치 않아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식당 부엌 난로 가에 앉아있었다
.젊은사람들만있는이알베르게에있자니헤어진핀란드
자매가 그리워졌다
. 여덟 개의 침대가 있는 방은 전기불도 없고 그나마 잠깐씩 주는 스팀도
없었다
. 까무러치게 추웠다. 화장실도 여러 층계를 내려가야 하는 마당 한 쪽에 있었다. 동행자만
있다면 차라리 밤을 새워 길을 걷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20121025
절대 고독 속에서

VILLAFRANCA DEL BIERZO LA FABA 25KM

온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길을잘못들어어젯밤9시쯤도착한옆침대의헝가리여자가
유럽 민간요법이라고식초를적신수건을아픈무릎양쪽에둘둘감고있어좁은방에서냄새가
진동했었다
. 밤새 나와 영국 청년, 독일 여자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었는데 그들은 어느새 일어나 새벽에 나간 것 같았다
. 춥고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서 그 강한
냄새를 맡으며 나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다가 겨우 세 시간 정도 잤다
.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녀를 바라보며 오죽 아팠으면 그랬을까 안쓰러운
생각보다 아무리 아파도 공동으로 쓰는 방에서 어떻게 저렇게 냄새를 진동시킬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 남의 아픔보다 내 불편함이 먼저인, 이런 마음을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 사람은 자기의 판단에 의하여 남의 행동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만약저여자와같은입장이었다면나도내고통을먼저해결했을까
?한방에서자야하는
다른 사람을 배려해 내 고통을 그냥 참아냈을까
? 확실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그
입장에 서지 않으면 남의 행동을 평가할수는없을것같았다
.나또한감기와수면부족인상태로
누구도 대신 걸어 줄 수 없는 길을 가기 위해 토스트와 커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

16세기 초에 벽돌과 돌로 지어진 어느 후작 궁전의 외곽 모습이 아침에 가는 길을 압도했다.
비가 그친 뒤라 아침 공기가 쌀쌀하게 느껴졌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양쪽으로 집집마다 베란다에
매달아 놓은 화분의 빨간 꽃들이 시야를 즐겁게 했다
. 예전에는 8개의 수도원과 6개의 순례자
숙소가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마을다웠다
. 예쁜 집들이 높은 산 아래 폭
파묻혀 있는 풍경을 바라보니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통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 삶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순간들이 아름다웠겠지만 지금 내 다리로 힘들게 걸으면서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
순간은 그 감동이 더 크게 느껴졌다
.

마을을 벗어나자 도로로 이어지는 다리 입구에 순례자 동상이 서 있었다. 비장한 각오를한듯
먼 곳을 바라보며 지팡이를 단단히 쥐고 있는 모습은 그당시 숭고한 정신의 순례자들의 실제
모습을 연상시켰다
. 신선한 아침의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며 높이 솟은 성당의
십자가들은 더욱더 이 아름다운 마을과 함께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

부드러운 햇살로 변한 날씨에 가벼운 복장을 한 순례자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산뜻한 색깔의
자전거 순례자들만이 달려가는 큰 도로를 따라 트라바델로
(Trabadelo) 로 접어들었다. 높은 계단
양쪽을 모두 생화로 장식해 놓은
, 잘 가꾼 묘지의 비석들이 보였다.

시골 마을의 산길, 오솔길, 길이란 길은 온통 밤나무 천지였다. 떨어진 밤송이들과 튕겨 나온
밤들로 범벅이 된 넓은 길을 걸어갔다
. 밤 껍질이 딱딱할 것 같아 그냥 지나치다가 하나 주워
손톱으로 긁어보니 껍질이 연하여 금방 벗겨졌다
. 몇 개를 더 주워 입에 넣고 오물거리니
점심으로 요기가 되었다
.

해발 590m에 위치한 이 마을에서 해발 1,330m까지 가파른 길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피레네
산맥 다음으로 힘들다는 길이었다
. 하늘 아래 완벽히 혼자가 되어 내 그림자의 안내를 받아가며
묵상을 하며 올라갔다
. 오직 자연뿐인 절대 고독의 공간 속에서 순례의 길을 걸으며 무언지
모르게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있는 것 같은 이 순간이 진정 행복했다
.

또 다시 밤나무로 숲을 이룬 길을 걸어 오후 230분쯤 베가 데 발카르세 (Vega de Balcarce)
도착하였다
. 시에스타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고 알베르게 문도 닫혀 있었다. 시간도 이르고
이곳에 머무를 생각도 없어 다시 길을 떠났다
. 계곡을 따라 나타나는 아기자기한 집들과 경사진
숲 속의 가파른 언덕길이 계속 이어졌다
. 나뭇잎으로 뒤덮여 어두컴컴한 숲길에서는 나뭇가지에
스치는 내 옷자락 소리에 몇 번을 놀라기도 했다
. 섬뜩한 숲길이었다. 오늘은 정말 근 8시간을
아무도 볼 수 없었다
.

일찍 어두워지는 산속의 비탈길, 10m 정도 앞에 있는 계곡 쉼터에 시커먼 물체가 보였다.
기절할 지경으로 놀라 멈칫하며 주춤주춤 다가가니 발을 다쳐 쉬고 있는 한국 남학생이었다.
맨발에 구멍이 숭숭 난 고무 샌들을 신고 있는 학생은 검게 탄얼굴에등에는배낭을앞에는Lap
top
을 메고 있었다. 서로 반가워하며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 오후 530분쯤 해발 916m에 위치한
라파바
(La Faba) 알베르게에 도착하였다.

산이 좋아 이 알베르게에서 3개월째 살고 있다는 독일 아가씨와 스페인 자원봉사자와 주인이
친절하게 반겨주었다
. 중국에서 가지고 왔다는 크고 작은 불상들이 눈길을 끌었다. 부엌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는 육중하고 둥근 돌 화로 안에서 수북한 밤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있는 이곳의 분위기는 석기시대로 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 불 근처에
앉아 따뜻한 티와 군밤을 그들과 함께먹으며오늘하루의무게를내려놓고쉴수있는안식처가
있음에 감사했다
.

고기가 먹고 싶다는 근영이 학생과 함께 알베르게에서 5분정도거리에있는산속마을조그만
식당으로 들어갔다
. 벌겋고 푸른 바둑판 무늬 식탁보에 수저통까지 있는 이 식당은 따끈한 우동
한 그릇 시켜 먹으면 딱 좋을 분식집 분위기였다
. 학교를 휴학하고 8월 초에 한국을 떠나 동부
유럽을 여행하고
, 카미노를 걸은 다음 내년 1월에 귀국한다는 근영이는 말수가 적고 순진하고
체구가 자그마한 학생이었다
. 한국 젊은이들의 진취적인 용기는 큰 장점으로 보이지만 급속도로
많아진 한국인들의 모습이 순례의 길에서 외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해졌다
. 아무런
맛도 없는뻑뻑한닭고기로대충저녁요기를하고식당을나오니산속밤공기의싸늘한추위가
다시 엄습해 왔다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