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분들 이야기 제18 편 김진숙(로사) 자매님 산티아고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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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장판에 등을 지졌으면

EL BURGO RANERO MANSILLA DE LAS MULAS 20KM

아침부터 가랑비도 아닌 제법 굵은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이제는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익숙하여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겠다는 듯이 여러 순례자들이 말없이 가방 덮개
, 판초비옷 등을
챙기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나도 배낭을 헤집어 바닥에 똘똘 말아 놓았던 가방 덮개와
비옷을 꺼냈다
. 옆에서 가볍게 입은 헬레나가 떨고 있는 것 같아 샬롯에서 사온 남방을 건네
주었다
. 반대 방향으로 가는 헬레나와 작별 인사를 하고 몇 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8시쯤
알베르게를 나왔다
.

모두 아무 말없이 걸었다. 추운 날씨도 아니고 바람도 없어서 비옷이 비를 막아 주고 있지만
시종일관 내리는 비를 맞으며 두 시간쯤 걸어서 나타난 바로 들어갔다
. 주인 겸 웨이터가
안녕하세요, 잘 자요, 맛있어요발음도 정확하게 한국말로 반겼다. 쉬고 있던 샬롯에서 온 짐
마틴이 내 젖은 비옷을 의자에 걸어주면서
“cheer up 로사하며 자기 앞자리를 권했다. 자리에
앉으며 둘러보니 실내 장식이 아기자기하고 아주 예뻤다
. 점심으로 스페인의 감자 오물렛
또르띠야와 오렌지 주스를 시키니
9유로였다. 북쪽으로 갈수록 물가가 점점 비싸졌다.

메세타 지역은 명상의 길이라는 이름에 맞게 순례자들이 각자 고개들을 숙이고 들쑥날쑥 뚝뚝
떨어져 걸었다
.물이고여질척한길을이리저리피해가며생각에잠겨걷고있었다.얼마후비가
뚝 그치니 같이 가던 순례자들이 다시 빠른 걸음으로 앞서서 자취를 감추었다
. 비를 맞아 빛깔이
더 선명한 주황색 비옷으로 매치를 한 멕시코 모녀만 앞에 보였다
. 2년간 철저히 순례의 길을
준비했다고 하는 친구사이 같은 낙천적인 모녀였다
.

남쪽과 달리 북쪽에서는 돌무덤을 볼 수 없었는데 오랜만에 넓은 벌판 길가에 십자가가 세워진
돌무덤이 보였다
.잠시멈춰서서여기까지별일없이순례를하고있음과걸어서완주할수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잠시 기도를 드렸다
.

목적지 마을 직전의 레리어고스 (Reliegos) 입구에 제법 크고 돌로 만든 포도주 저장 동굴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나지막한 둥근 언덕 위에 또 다른 크고 작은 포도주 저장 동굴들이 보였다
.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다시 제법 굵은 비가 오기 시작했다.

몸의 한기를 느끼며 목적지 물라스 (Mulas) 로 들어섰다. 이곳 역시 활기가 없고 양쪽으로 쌓아
놓은 성벽 등 중세 시대에서 벗어난것같지않은또다른한적한마을이었다
.알베르게로들어가
2층 방에 있는 침대 아래층을 확보하고 감기 기운이 있어 곧바로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실의
수도꼭지가 뻑뻑하고 잘 돌아가지 않아 온도를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 이리저리 힘겹게
돌리다가 다행히 최고로 뜨거운 물인 것 같은 미지근한 물로 고정시켰다
. 그러나 샤워를 하는
도중에 기절할 듯 차디찬 물로 바뀌어 한기가 있는 온몸이 오돌오돌 떨리기 시작했다
. 침대로
올라가 가지고 있는 옷들을 다 껴입고 봉사하는 캐나다 여인의 배려로 담요를 네 장씩이나 덥고

누워 있어도 온몸이 떨리며 등에 얼음을 대고 있는 것처럼 차고 몹시 추웠다. 뜨끈뜨끈한
전기장판에 등을 지졌으면
…. 옆자리에 누운 호주의 레베카는 심한 기침을 하며 자기도 샤워
도중에 갑자기 찬물이 나와서 감기가 더 지독히 들었다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했다
.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가 칼리엔테 티와 옆 사람이 먹는 이름도 모르는 누리끼리한 수프를 감기 물약이라
생각하고
20유로어치나 연거푸 들이켰다. 몇 마디 배워간 스페인 말들 중 뜨거운이라는 뜻의
칼리엔테라는 단어를 순례의 길이 끝날 때까지 요긴하게 써 먹었다
.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바랜 색 같은 붉은 가로등 불빛으로 비상약으로 가져온 감기약을 찾아
먹으며 춥고 외롭고 온기가 조금도 없는 으스스한 좁은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 이런 상황에서도
카미노를 걷기로 한 나의 결정에 조금도 후회스러움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어서 와 주기를
기다렸다
.

20121018

레온 입성, 아름다움의 극치 스테인드 글라스

MANSILLA DE LAS MULAS LEON 21KM

설상가상으로 누군가 비어 있는 침대 위 난간에 긴 수건을 널어놓아 어두운 데서 일어나다 내
얼굴 앞으로 늘어진 타올 한 귀퉁이에 눈을 찔렸다
.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쩔쩔매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오늘 레온
(Leon) 으로 입성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황량한 벌판 들판으로만 이어져
힘들었던 메세타 지역이 드디어 오늘 끝나는 날이었다
. 불빛을 받아 사방으로 뻗쳐서 오는 것
같은 빗줄기를 창 밖으로 바라보며 덤덤히 비옷과 배낭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

심한 기침을 하는 호주의 레베카와, 빗속의 복잡한 찻길이 위험하다는 멕시코 모녀는 레온
도시까지 버스로 간다고 했다
. 서운한 작별을 하고 캐나다에서 온 젊은 부부와 비 오는 거리로
나왔다
. 나는 집을 떠나올 때 계획했던대로어떠한일이있어도낙오하는날없이걸어서끝까지
가고 싶었다
. 아직도 으스스하고 감기 기운이 있지만 며칠 허리, 물집, 발가락 아픔으로 고생을 한
후로 다행히 발과 몸 상태에는 별 이상을 못 느꼈다
.

마을 끝을 지나는 강 위에 있는 돌다리를 건너 질척한 길을 얼마쯤 지나니 찻길이 나오며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 레온시와 다른 도시들을 오고 가는 화물차가 흙과
잔모래가 섞인 물을 튀기며 대단한 속도로 질주했다
. 독특하게 휘어진 다리를 건너 신호등 없는
찻길을 여러 번 건너던 중
, 어느 복잡한 차도에서 별안간 빗줄기가 굵은 빗발로 변하며

컴컴해지는데 노란 화살표는 안 보이고 비옷은 뒤집어지고 너무 무서워 레온만을 계속 외쳤다.
모두들 허둥지둥 하면서 지나치는데 어느 순례자가 내 팔을 잡고 안전한 인도로 데리고 나와
가는 길을 친절히 가르쳐주고 총총히 떠났다
. 카페로 들어가 20분쯤 기다리니 빗줄기가 약해지고
하늘이 조금개어가고있었다
.다시차도옆의좁은인도를따라언덕위에있는마을들을지났다.
또 다시복잡한시내로나오니노란화살표가잘보이지를않았다.왔다갔다하는나를본초록색
비옷을 입은 순례자가 앞서 가며 인도하는 것 같이 계속 뒤를 돌아보며 시야에 보이는 거리를
유지했다
. 얼마쯤을 가다 공장 지대인 큰 거리에서 이제는 안심했다는 듯, 그 순례자는 손을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그쳤다 약했다 강했다 하는 비를
맞으며
8시간여 만에 드디어 어렵고 힘겹게 레온 도시로 들어섰다.

명상의 길이 끝나고 깨달음의 길이 시작된다는 파울로 코엘료가 가장 사랑했다는 도시
레온
(Leon 사자라는 뜻) 은 새로운 현대식 건물과 레온의 상징인 여러 가지 조각상들과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

나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의 산타 마리아 알베르게에서 묵고 싶었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 숙소를 찾는 몇 순례자와 물어물어 순례자들의 그림으로 벽을 장식하고 있는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 순례자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는 넓은 정원이 인상적이었다. 크레덴시알에
스탬프를 받을 때마다 갖는 희열을 다시 한 번 느꼈다
. 물기가 군데군데 번져있고 수증기로 가득
찬 넓은방의구석침대로안내되었다
.희열뒤에는육체적고통이더심하게따라오는것같았다.
너무 춥고 등이 떨려 다시 배낭을 들고 나와 알베르게 바로 옆에 있는 산 호세 호텔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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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나 주었다.

복도가 성화로 장식되어 있는 호텔은 정숙한 분위기였다. 한 시간쯤을 스팀 벽에 기대어 등을
녹이며 침대 위에 걸려 있는 성 야고보 초상화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 젖은 옷에서
무럭무럭 김이 서려 나온다
. 고생을 자처하며, 이 힘든 카미노를 걷는 이유를 뚜렷하게 찾지 못한
채 샤워를 하고 다시 기운을 차려레온성당으로향하였다
.성당이서있는광장을중심으로양쪽
길을 따라 시에스타가 끝난 아기자기한 상점들
, 카페, 식당, 기념품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관광객, 그룹들, 학생들, 배낭을 멘 순례자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레온은 로마인들이 세운 도시로 기원전 1세기부터 로마군단이 주둔하여 도시로 발전하였고
이름 레온은 군단이라는 레지오
(Legio) 에서 왔다고 한다. 그 후 아스투리아스 왕국 출신 알폰소
1세가 레온을 정복하고 739년 레온 왕국을 탄생시켰다. 가르시아 1세가 수도를 레온으로
옮기면서
, 정식으로 레온 왕국이라 불리게 됐다. 그 후 국토 회복 운동의 주도권을 획득하고
13세기 페르난도 3세가 1217년 카스티야 왕국과 최종적으로 통합하여 가톨릭 왕국으로서
최대의 번영과 영광을 누렸고
, 1492년 레온 카스티야 왕국은 이슬람의 마지막 왕국인 그라나다를
물리치고 에스파냐 독립의 원동력 역할을 했다
.

5유로를 주고 레온 성당으로 들어갔다. 13~16세기에 걸쳐 세워진 레온 대성당 (Cathedral de las
Leon)
은 늘씬한 탑과 우아한 이중 아치로 된 프랑스식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불린다. 사방 벽면 위
아래 여러 층으로 된 스테인드 글라스 면적이
1800평방 미터라 하며 벽에는 프레스코 벽화와
미술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 스테인드 글라스 창이 125개나 있고 창문 중에는 30m가 훨씬 넘는
높이에 설치된 것도 있으며 각각 다른 모양과 색깔의 다양성은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 신의 작품인 듯한 스테인드 글라스로 가득 메운 레온 성당 만으로도 스페인은
영원하리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움에 홀려 아픔도 잊고 네다섯 번 성당을 돌아 눈에 담고

피에타가 있는 작은 채플을 둘러보았다. 남편이 무척 배우고 싶어 했던 스테인드 글라스.
성당을 언젠가 둘이서 다시 한번 와보리라 다짐하며 성당을 나오니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상업적인 용도로 지은 건물로 내부를 개조해서
현재는 은행으로 사용하고 있는 카사데 보티에스
(1891­1894) 건물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니 6
미사 시간이 다 되었다
. 레온 대성당에 딸린 옆의 작은 성당 앞자리에 앉아서 미사를 드렸다.
역사적인 도시의 거룩한 성당에서 성체를 모시는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

르네상스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는 성당 밖의 복도에서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던 적이 있는
덴마크 여자를 만났다
. 뒷자리에서 미사를 드리고 나를 따라 나왔다고 했다. 그녀는 오늘 레온
성당에서 몇 년에 한 번씩 중세 복장을 하고 중세 악기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마침
오늘 있다며 같이 관람하자고 했다
. 2000년 역사를 지닌 레온 도시의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성당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은 절호의 기회이며 상상만 해도 멋스럽고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
하지만 밤 11시에 끝나는데 길눈이 어두워 깜깜한 골목을 지나야 하는 숙소에 혼자서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 또한 당장 급한 두툼한 잠바가 필요해 830분에 문을 닫는다는 가게를 찾아가야
했다
. 섭섭한 마음에 카페에서 간단한 저녁으로 샌드위치를 먹고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레온 성당 앞면을 장식한 정교한 조각상들을 비롯해서 고풍스러운 빌딩에서 비치는 은은한
빛과 거리의 양쪽에 늘어선 아기자기한 상점들
, 불빛들에 비쳐 무지개색으로 보이는 빗줄기들,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옷차림은 레온의 밤거리를 더욱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골목마다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이 있는 거리를 몇 바퀴 돌아 찾아간 가게는 비가 와서 장비를 구입하려는
관광객과 순례객으로 붐볐다
. 거의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잠바와 털모자를 구입했다.

저녁 9시쯤 따끈한 티가 마시고 싶어호텔숙소앞에있는카페에들어갔다.레온이좋아2년째
살고 있다는 러시아에서 온 젊은 바텐더는
1960년대 짐 리브스의 ‘He will have to go’, ‘Moon
river’
등을 비롯하여 감미로운 팝송들만을 틀어 놓고 있었다. 손님인 듯한 세 명의 스페인
사람들과 낯이 익은 두 여자들이 와인을마시고있었다
.서로어디로가는줄도모르는대화아닌
대화를 하며 칼리엔테 티를 마시고
2.50유로를 내고 나오는데 러시아 청년은 간단한 저녁을 했단
내 말에 기다리라고 하더니 돼지 뒷다리를 훈제한 하몽과 빵
, 치즈를 종이에 싸주어 받아 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

가운데 조각상이 달린 분수대만 불빛이 비추며 그 주위를 울퉁불퉁한 자연석으로 깔아 놓은
바닥 위로 비가 뿌리는 운치 있는 광장을 한참 창문 너머로 바라보았다
. 레온 성당의 아름다움,
레온의 역사를 말하는 듯한 건물들과 거리를 보았던 설레는 마음은 순간적인 감상만은 아닌 것
같았다
. 레온은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분위기가 그대로 간직된 듯한 매력적인 도시였다. 매일
전화를 해서 격려와 걱정을 하며 순례의 길을 멀리서 같이 가고 있는 남편에게 오늘은 더욱더
감사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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