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분들 이야기 제9편 김진숙(로사) 자매님 산티아고 가는길

20111116

, 인생의 행로 같은 길

LOS ARCOS    VIANA  19.5KM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하는 시간은 대충 20분 정도였다. 내 짐은 잠바, 바지, 스웨터, 조끼, 잠옷, 내복, 모자, 양말 세 켤레, 판초비옷, 기본적인 화장품과 노트 등 무게를 줄이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가볍고 얇은 것들이었다.

발가락 여기저기에 반창고를 붙이느라 시간이 걸리는 언니를 기다려 알베르게를 나왔다. 오늘의 목적지를 가기 위해선 어제 보았던 산타 마리아 성당을 지나야 했다. 이 성당에는 복도 가운데 그늘에서 보관중인 성모상이 있는데 1년에 한 번 615일에 햇볕을 쬐게 하는 전통이 있다 한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성당을 카메라에 담고 17세기에 만들었다는 카스티야 문 (Puerta de Castilla) 을 통과해 마을을 빠져 나왔다.

올리브 마을을 지나니 다시 넓고도 끝없는 포도밭으로 이어졌다. 포도주 생산이 세계 3위라는 나라. 이 거대한 밭에서 어떻게 포도를 수확할까? 궁금해진다. 가끔은 포도밭이 끝나고 농부가 큰 트렉터로 밭갈이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년 봄을 위한 밭갈이일까 아니면 11월 중순에 무엇을 심으려는 것일까, 이 넓은 땅에 불모지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걷다가 문득 앞을보니같이길을 떠난 남자들이 아스라이 보이며 뒤에는 언니가 기를 쓰고 따라 오고 있었다.

7km 정도를 걸어 돌집들이 많은 작은 산솔 (Sansol) 로 올라왔다. 지대가 높은 마을이다. 언덕 아래가 한눈에 보이는 풀밭에 앉아 메모를 하며 멀리서 오고 있는 언니를 기다렸다.

다시 길을 떠나 고지대에 위치한 토레스 델 리오 (Torres del Rio) 에 들어서니 로마네스크 양식의 팔각형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성묘 성당 (Iglesia del Santo Sepulcro) 으로 12세기 말 예루살렘의 성묘 성당과 유사하게 만든 팔각형 평면의 성당이다. 템플 기사단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성당 앞에 어린아이들이 모여 앉아 선생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한때 유구하고 찬란했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일까? 아니면 생전 미사를 드릴 것 같지 않은, 순례자들의 사진 배경으로만 남아 있는 것 같은 성당에 대한 유래를 듣고 있나? 여기저기 세월의 이끼가 잔뜩 끼어 있는 성당을 보면서 왠지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마을을 벗어나 평원을 지나니 바람이 세차게 부는 급경사 언덕길이 나타났다. 위험해 보였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비탈길을 사력을 다해 올라가 산등성이에서 뒤돌아보니 조금 전 지나온 길이 아득하게 보였다. 지나왔던 길도 가야 할 길도 한눈에 보였다. 구불구불한 길, 곧게 뻗은 길,오르막길 내리막길, 빤히 보이는데 장애물에 막혀 돌아가야 하는 길, 나무그늘이 시원한 길, 앞으로 가야만 하는 인생의 행로 같은 다양한 길이었다.

오늘은 은근히 자신이 있었던 나의 체력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지친 순례자들을 위로하려는 듯이 여기저기 돌길들이 예쁘게 놓여 있었다.

목적지인 비아나 (Viana) 까지 3.8km 라고 새겨진 돌무덤 옆에 앉아 그래도 둘 다 계속 걸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다시 일어나 한 시간 반쯤을 터덜터덜 걸어 나바라 지역의 마지막 마을이었던 비아나에 들어섰다. 이 마을은 오래된 성곽으로 둘러싸인 국경요새였다. 또한 나바라 왕국의 유명한 산초 왕 3세가 상업도시로 발전시킨 곳이다. 입구에 미술학원이 있어 들러보니 아이들은 없고 전부 시골 할머니와 아줌마들 같은데 피카소 풍의 그림을 그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고딕 양식의 산타 마리아 성당을 둘러 보았다. 이곳 성당 반석 아래에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아들 체사르 보르지아 (Cesar Borgia) 의 유해가 묻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눈길을 받으며 알베르게를 찾아가던 중 차정임, 오한나씨와 마주쳤다. 두 사람은 일찍 도착해서 장보러 가는 중이라며함께한국음식해먹자고했다.오늘은우리가한턱 내겠으니 먹고 싶은 것 다 사오라고 하였더니 스페인 쌀과 삼겹살, 감자, 양파, 계란, 맥주, 오렌지, 감 등을 사왔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알베르게 부엌에서 특별 요리를 만들며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쉬라고 했다.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온 초고추장을 꺼내고 라면 수프 가루로 양파 찌개를 끓이고 삼겹살을 구워 맥주와 함께, 거나하게 우리 식의 파티를 하였다. 오한나씨에게 휴대전화를 빌려 기분 좋게 남편과 통화할 수 있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에서 살기로 돌아온 몸과 마음의 간사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하루였다.

오늘 밤 알베르게는 네 명의 한국 여인들과 프랑스 여인뿐인 여인 천하였다. 3층 침대가 있는 방에서 맘대로 골라잡는 호사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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