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분들 이야기 제5편 김진숙(로사) 자매님 산티아고 가는길

20111112

경건한 저녁 미사, 팜플로나에서

LARRASOANA    PAMPLONA  19KM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어제 갔던 가게로 갔다. 그 가게 여주인은 한국 사람들을 많이상대해본 아주머니 같았다. 한국 돈 만 원권, 오천 원권을 가게 안 벽에다가 붙여놓고 한국 사람들은 돈이 많다며 부산하게 떠들었다. 커피와 크루아상, 오렌지 주스만으로 25유로였다. 이제까지 스페인 시골 마을을 걸으면서 때 묻지 않고 순박하게 보이는 사람들에게 푸근한 정을 많이 느꼈었는데….

오늘도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자갈길이 대부분이었다. 가는 곳마다 다양한 종류의 돌들이 깔려있었다. 여정이 10여 일 남아있었지만 아직까지 내 몸에는 별 이상 신호가 없었다. 언니는 자주 길거리에 주저앉아 발에 반창고를 이리저리 붙이며 괴로워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가지고 간 반창고를 언니에게 건네주는 것뿐이었다.

다섯 시간 정도를 걸어 강 위에 여섯 개의 아치가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중세 다리를 건너 트리니닷 데 아래 (Trinidad de Arre) 로 들어왔다. 마을과 마을은 거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카미노가 번성했던 11~12세기에 만들어진 다리들은 거의 그당시 스페인에 들어온 건축 양식인 단순하고 소박한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다. 이 마을도 카미노 마을로 수도원과 오래된 병원이 보였다. 중간중간 마을에 중세기 순례자를 위한 병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폐허가 된 것 같았다. 터널을 지나 노란 화살표를 따라 한시간 반 정도 더 걸어 막달레나 중세 다리를 건너 드디어 팜플로나 (Pamplona) 에 오후 다섯 시쯤 도착했다. 이곳은 요새였던 도시로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중세 시대부터 순례자에게 개방하였다는 프랑스 문이라고도 하고 어느 군인의 이름을 따 수말라카레기 (Zumalacarregui) 라고도 하는 문을 통과해 시내로 들어왔다.

중세 도시인 팜플로나는 카미노에서 처음으로 만난 큰 도시였다. 2000년 역사를 지녀 오래된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과 현대식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이다. 로마 시대에 폼페이우스 장군이 건설하여 이슬람의 통치를 거쳐 10세기 나바라 왕국의 수도로 번성했고 중세에는 순례의 길 중계 지점이었다고 한다. 매년 76일부터 14일까지 팜플로나의 수호 성인인 산 페르민 (San Fermin) 을 기리는 투우경기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작가 헤밍웨이를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올려준 단편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산 페르민 축제를 소개하여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알베르게를 찾아 가는 길에 있는 돌다리와 단풍이 아름다운 공원의 십자가와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구경하면서 걷다 보니 낮 동안의 피로가 많이 사라졌다. 돌다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한국에서 왔다는 차정임씨를 만났다. 순례의 길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는 그녀는 광고회사를 다니다 사표를 내고 왔다며 미혼이라고 했다. 짧은 대화 속에서 자기만의 테마가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 젊은이들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었다.

오늘 묵을 곳은 커다란 현대식 알베르게였다. 깨끗하고 편리하게 되어 있었고 부엌과 인터넷실과 세탁실도 갖추어져 있었다. 하룻밤에 12유로이고 담요 빌리는데 3유로를 받았다. 자리를 배정받은 다음 샤워를 하고 거리로 나오니 주말의 대도시답게 북적거리는 모습이 처음에는 무슨 큰 사건이 일어난 줄 알았다.

슈퍼에 들르니 신라면이 있었다. 너무 반가워 비싼 편이지만 한 개당 2.5유로씩을 주고 네 봉지를 샀다. 다른 먹거리와 더불어 25유로나 썼다. 물가가 무척 비싼 편이다. 그래도 내가 몸담고 있는 미국이 사람 살기에는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으로 라면을 먹고 오랜만에 스페인의 전통적인 토요일 저녁 8시 미사에 참석했다. 성당 입구에서 두 개의 문으로 연결된 회랑이 아름답다. 고딕 양식의 정교한 조각들과 웅장한 규모의 산타 마리아 주교좌 대성당에서 성체를 모시며 드리는 미사는 경건하고 엄숙했다. 가슴속에서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것도 감사하고 걸을 수 있는 것도 감사했다. 무심코 지내던 일상이 모두 감사하게 다가왔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한층 더 많은 사람들로 거리는 축제 분위기였다. 오후에는 시에스타로 쥐 죽은 듯 하던 도시가 이렇게 활기차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었다. 노천 카페를 기웃거렸지만 앉을

자리가 없어 팜플로나의 밤거리를 걸어 보았다. 어둠이 내리고 저녁 89시나 되어서야 깨어나는 스페인 사람들의 즐기며 노는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던 중 또 다른 한국 아가씨인 오한나씨를 만났다. 혼자서 6개월 계획으로 스페인을 거쳐 남미를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결혼할 예정이라는 다부진 아가씨였다. 성당의 미사가 경건해서 좋다는 개신교 신자이었다. 길에서 만난 인연이었지만 우리는 함께 웃으며 저녁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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