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분들 이야기 제4편 김진숙(로사) 자매님 산티아고 가는길

2011년 11월 11일

걷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RONCESVALLES    LARRASOANA  25KM

배낭을 챙겨 새벽 6시에 알베르게에서 나오니 아직도 길 표시가 안 보일 정도로 깜깜했다. 얼마쯤 기다리니 세 명의 남자 순례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을 따라 7시부터 걷기 시작했다. 약간 흐렸지만 걷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농가를 지나면서 보이는 물레방아, 볏단, 거름냄새가 한국의 농촌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허름한 복장의 농부들, 소목에 걸어둔 방울에서 딸그랑거리는 워낭 소리, 시간마다 울리는 평화롭고 은은한 성당의 종소리가 마음을 무척 평온하게 했다.

현대식으로 건축한 성당이 보이는 에스삐날(Espinal) 마을의 포장길을 지나니 순례자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맑고 차디찬 샘이 있었다. 다시 숲 속의 골짜기를 지나서 해발 922m의 메스키리츠 고개(Alto de Mezkiritz) 정상에서 도로로 난 길을 한 시간쯤 걸어 비스까렛(Viacarret)이라는 마을로 들어왔다. 목축을 주로 하는 마을이라 푸른 목장에 얼룩배기 소들이 많이 보였다. 12세기까지 순례자 병원이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던 마을이라 한다. 우리는 2층 베란다에 빨간 꽃 화분들로 장식된 가게 밖 의자에 앉아 커피에 우유를 섞은 카페 콘 레체와 크루아상과 오렌지로 아침 식사를 했다. 잠을 못 잤으니 먹는 모든 것이 깔깔했다. 어디서 왔는지 검은 고양이 세 마리가 주위를 맴돌았다. 조금 있으니 봉고차 한 대가 와서 종을 치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집저집에서 문을 열고 나와 신문과 빵을 받아 든 평화로운 얼굴들이 금방 사라져 버렸다. 보부상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이곳에는 생필품 가게가 많지 않아 주문을 받아 배달한다고 했다. 마을을 지나오면서 나무에 달려있는 아기 주먹만한 사과를 하나씩 따서 맛보니 꿀맛이었다.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마치 순례자의 특권인양 거리낌이 없다.

농촌을 지나면 오솔길이 이어지고 오솔길을 지나면 예쁜 돌길이 되었다가 온통 낙엽이 덮인 길로 이어졌다. 나는 아직까지 발에 이상이 없는데 언니는 신발 때문에 수시로 멈춰서며 발가락 통증을 호소했다. 정말 누가 도와줄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냥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는 단조로운 평원길을 묵묵히 걸었다. 마치 걷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낙엽이 축축하게 깔려서 미끄럽고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을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었다. 너무 긴장한 상태로 걸어서인지 온몸에 땀이 배었다. 잠깐 숨을 돌리면서 돌탑 위에 예쁜 돌을 골라 얹어 놓으며 내 가족과 주위에 있는 분들을 위해 잠시 기도를 드렸다.

숲 속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에서 순례자의 무덤이 눈에 띄었다. 비석에는 ‘일본인 싱고 야마시타 2002년 사망’ 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슴이 뭉클해져 잠시 묵례를 했다. 나는 순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면서 한 번도 생사의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러나 피레네 산맥에서의 사투가 머릿속을 스쳤다.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엄청난 고통이 그새 기억에서 멀어졌으니….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일까? 다시 낙엽으로 뒤덮인 길을 올라가고 내려오고를 몇 차례 하다가 다리를 건너 주비리(Zubiri)에 들어섰다.

상점들 문이 많이 닫혀있었다. 시에스타(siesta) 시간이었다. 오후 2시부터 4~5시까지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는 상점들도 문을 닫았다. 다행히 열려 있는 슈퍼가 있어서 빵과 포장된 삶은 문어를 사서 고풍스러운 광장 벤치에 앉아 초고추장에 찍어먹고 있는데 마침 학교가 끝난 초등학생들이 지나갔다. 학생들이 대체적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매력적으로 생겼다. 군데군데 순례자들이 모여 앉아 알베르게 문 여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알베르게 문 여는 시간은 오후 4시쯤이다.

우리는 오늘 계획한 25km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 마을인 라라소냐(Larrasoana)로 향했다. 라라소냐까지 5.3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왔다. 지도와 길에 표시되어 있는 거리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 순례의 길 상징인 노란 화살표와 조개 문양을 놓치는 바람에 오늘 숙박 장소로 정해 놓았던 마을을 지나쳐 버렸다. 한적한 산길에서 물어볼 사람도 없어 다시 언덕길, 오솔길, 오던 길을 되돌아가며 한 시간 정도를 헤매다 라라소냐 사인을 발견했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지만 이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알베르게에 다행히 침대 두 개가 남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위층 좁은 침대 둘을 맡아 놓고 방 옆에 설치된 공중전화로 남편에게 무사함을 알렸다.

저녁 해결을 위해 마켓을 찾아가는 길 양쪽에 육중한 돌집들이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고 한적했다. 조그만 상점에서 오랜만에 피자에 맥주를 사서 마신 후, 낮에 걸으면서 만난 한국 대학생들을 위해 주스를 사가지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다른 순례자들은 대화가 한창이었다. 조금 같이 앉았다가 들어오는데 학생들이 아래층 침대가 조금 편할 거라면서 양보해 주었다. 아래층 침대에서 잠을 청했지만 위층에서 움직일 때마다 낡은 침대가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낡아서 가운데가 아래로 불쑥 가라앉은 매트리스가 내 얼굴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도 움직이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될 것 같아 꼼짝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알베르게 중 최악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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