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분들 이야기 제3편 김진숙(로사) 자매님 산티아고 가는길

2011년 11월 10일

밀레의 ‘만종’처럼

RONCESVALLES    BURGUETE  10KM

아침에 일어나니 신기하게 언니도 나도 몸이 멀쩡했다. 누군가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순례자들은 벌써 떠났고 우리만 남아 있어 관리자인 듯한 분이 8시까지는 나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크레덴시알에 어제 받지 못한 도장을 받고 서둘러 알베르게를 나오니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스페인 땅으로 피레네 산맥의 끝자락인 론세스바예스는 종탑이 달려있는 수도원과 이슬람 군대를 물리치고 성지 탈환을 한 기념비가 보였다. 중세기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한적한 분위기였다. 순례자들이 통과하는 중요한 지점이며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 역사적인 전설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8세기 샤를마뉴 대제와 용맹한 기사인 롤랑이 피레네를 넘어 스페인을 침략했을 때에 남긴 역사적인 사건들의 흔적들과 고딕 양식의 산타 마리아 성당, 성 아구스틴 성당 등 몇 개의 성당과 박물관이 있다. 그러나 이 알베르게 근처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호텔과 작은 바가 있을 뿐이었다.

바에 들어가 아침을 먹고 비를 피하고 있는데 정말 보기에는 남루한 차림의 순례자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예루살렘을 거쳐 몇 달 동안이나 순례의 길을 걷고 있다는 그 순례자는 조그만 예수님 사진과 성경 구절이 프린트 되어 있는 종이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순례를 하면서 전도를 하는 것 같았다. 식사를 하는 동안 비가 그치고 청량한 하늘에 햇살이 비쳤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떡갈나무와 낙엽송이 양쪽으로 쭉 늘어선 도로를 3~4km쯤 내려오니 작은 마을이 보였다.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머물면서 송어 낚시를 즐기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를 집필한 곳으로 유명한 부르게떼(Burguete) 마을이었다. 마침 입구에 호텔이 있었다. 어제 너무 무리한 탓에 이곳에 들려 세 시간만 자고 가려고 들어가니 하루 요금인 50유로를 다 내야 한다고 했다. 아깝지만 별수 없이 들어가 서너 시간을 푹 자고 나왔다. 이틀 만에 푹 쉬고 나니 피레네 산맥에서의 사투는 먼 옛날같이 몸이 개운하고 정신이 맑아졌다.

스페인의 전형적인 예쁜 집들이 또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빨간 지붕과 하얀색 벽이 산뜻한 집집마다 창가에는 빨간 제라늄 꽃이 피어 있었다. 르네상스 풍의 유화로만 장식되어 있는 식당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하고 문이 닫혀 있는 성 니콜라스 성당을 카메라에 담으며 성당 시계를 보니 3시 40분을 가리켰다.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자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양떼 무리들이 곳곳에 모여 있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과 숲을 지나며 두 시간가량 더 걸었는데 오솔길에서 카미노의 표시인 조개 문양과 노란 화살표가 나타나지 않았다. 갈림길에서 다른 오솔길로 숲 속을 한참 지나다가 나오기를 두세 번, 저녁 6시가 되어가니 벌써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가던 길을 포기하고 저녁노을에 물든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마을로 다시 내려오는데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히 들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저절로 두 손이 앞으로 모아지고 고개가 숙여졌다. 마치 그 유명한 그림 밀레의 ‘만종’처럼.

다시 부르게떼 마을로 돌아와 알베르게를 찾으니 스페인 할머니가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신다. 이맘때쯤 배낭을 멘 사람들이 다가오면 알겠다는 듯 할머니는 묻기도 전에 내 손을 잡고 알베르게 문앞까지 데려다 주셨다. 깨끗하고 식당까지 갖추어진 이 사설 알베르게는 하루 저녁에 한 사람이 12.50유로인데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열 명이 자는 2층 방에 우리 자매 둘이서만 들었다. 담요도 세 장씩이나 덮고 엎드려서 순례의 길 체험기 첫 줄을 쓰기 시작했다. ‘남편도 이 카미노에 오고 싶어 했는데’ 를 끝으로 노트를 닫고 잠을 청하는데 그 조용함도 잠깐이었다. 아래층 식당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방음 안 된 2층 방에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저녁 8시나 되야 문을 여는 식당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스페인의 밤 문화가 시작되었다. 내려가보니 누구 생일인지 케이크가 보이고 빈 포도주 병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식탁과 의자들은 한군데 몰려 있고 한 20여 명이 기분이 최고조로 달한 것 같은 신나는 춤들을 추고 있었다. 불평을 한들 알아들을 것 같지도 않아 어이없어 잠시 바라보다 그냥 방으로 들어왔다. 새벽 3시까지 이어지는 것 같았다.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