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분들 이야기 제2편 김진숙(로사) 자매님 산티아고 가는길

 제 2 편     2011년 11월 9일 수요일

무모했던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다S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27KM

드디어 순례의 길 첫날 아침이 밝았다.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며 짐을 싸고 있었다. 배낭의 부피들이 대단했다. 앞으로 수없이 짐을 풀고 싸는 일도 순례의 길에 큰 몫을 차지할 것 같았다. 우리의 배낭은 다른 순례자들의 배낭에 비하면 소풍가는 수준의 부피였다. 알베르게에 따라 다르지만 이곳에는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 부지런히 배낭을 꾸리고 바게트 빵과 주스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화창했다. 걷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운치 있는 돌길 양쪽으로 고풍스런 집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답게 예쁘고 정감있는 마을이었다. 인구 1600명의 이 작은 마을이 우리 순례길의 시작점이었다.

프란세스 루트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가기 위해서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이곳이 가장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해마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 중세 마을을 찾는다

몇 블록 떨어져 있는 순례자협회 사무실에서 간단한 신청서를 작성한 후, 크레덴시알을 발급받았다. 그리고 순례 중 지나야 하는 마을과 구간의 길이가 표시된 지도를 받고 공립 알베르게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안내문을 받으며 간단한 주의 사항을 들었다. 순례자 통행증인 크레덴시알이 있어야 알베르게에 묵을 수도 있고 그곳을 경유했다는 스탬프를 받을 수 있었다.

비수기라 알베르게가 문을 닫았을 경우를 대비해서 계획한 그날의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정보를 미리 알아야 하고 걷는 구간을 다시 조정해야 했다. 사무실 책상 한 쪽에 놓인 바구니에서 조개껍질을 골라 다른 순례자들처럼 배낭 가운데에 단단히 매달았다. 순례자의 상징으로 순례의 길을 걷는 동안 성 야고보가 안전을 지켜준다고 해서 모든 순례자들이 배낭에 매달고 다니는 그 조개껍질이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호감을 갖고 있는 직원이 조개껍질 하나를 더 가지라면서 커피까지 끓여주었다. 올해 이곳에서 출발한 한국인 숫자는 1,425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한국인의 숫자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었다. 아침 9시. 출발이 늦은 시간이라 주위에 배낭을 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언니와 나는 가슴 벅찬 순례의 첫발을 내딛기 전 마을 입구에 있는 성당에 들려 촛불을 밝히며 잠깐 기도를 드린 후 야고보 문(Porte de Saint-Jacque)을 통과하고 제일 필요한 지팡이와 점심에 먹을 햄과 빵, 음료수를 샀다. 거리는 13~14세기에 만들어진 그대로의 모습인 듯 아담한 가게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 산티아고 가는 길(Chemin de Saint-Jacques)이라고 표시된 그림으로 낯이 익은 조개껍질 표시를 따라 순례의 첫발을 내디뎠다. 나폴레옹 루트. 피레네 최고봉인 Col de Lepoeder 해발 1,430m의 고지. 첫날 시작부터 그 유명하고 힘들다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인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했다.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에서 출발해 넘었다는 피레네 산맥이다.

처음부터 우리에게는 만만치 않은, 지그재그로 된 가파른 경사길이었다. 얼마를 올라갔을까, 각오를 하고 왔지만 무척 힘들었다. 언니는 시작부터 신발에 문제가 있음을 호소하며 배낭 무게를 던다고 많지도 않은 옷가지 중 몇 개를 버렸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막길을 세 시간쯤 올라간 것 같았다.

힘든 중에도 몇 겹의 산줄기로 둘러싸인 피레네 산맥을 내려다 보니 고요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뒤돌아보니 저 멀리 보이는 프랑스 남쪽 끝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빨간색 지붕의 시골집들,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 하얀 양떼들의 무리가 전원 풍경을 좋아하는 내게 더 이상은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정말 오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니 기회를 만들어 주고 적극적으로 도와 준 남편에게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세 시간 넘게 오르는 동안 순례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기를 쓰고 올라가는데 표지석에 이 길은 순례자의 길이 아니라 관광길이라고 쓰여 있었다. 언니와 나는 목적을 갖고 왔으니 순례의 길로 가자고 합의 했다. 지나가는 차에 어렵게 부탁해서 다시 되돌아갔다. 원점으로 돌아와 순례의 길 루트로 피레네를 넘기로 하고 잘 살펴보다 아침에 조개껍질을 달던 사무실에서 설명을 들은 것이 생각났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데는 나폴레옹 루트와 발카를로스(Valcarlos) 루트가 있는데 많은 순례자들이 이 나폴레옹 루트를 넘는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올라갔던 길이 바로 그 나폴레옹 루트였던 것이다. 아, 제대로 가고 있었는데…. 순례자 협회 사무실에서 설명도 듣고 질문도 했었는데 둘 다 너무 힘들고 들떠 있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순례의 출발점인 길가 풀밭에 앉아 아침에 사두었던 빵과 햄을 점심으로 먹으며 지독한 워밍업을 했다 생각하고 다시 걷기로 했다. 모든 순례자들이 제일 힘들었다고 한 피레네 산맥, 발카를로스 루트. 길 양쪽을 따라 점점 높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낮아지는 것 같기도 한 산맥줄기. 얼마나 올라왔는지 귀가 먹먹했다. 올라오는 동안 한 사람의 순례자도 만나지 못했다. 카미노 행에서 첫 번째 마을이 나타났다. 아기자기한 가게에서 음료수와 간식을 사면서 손짓 발짓 모든 제스처를 다 동원해 카미노의 첫 번째 알베르게를 물었으나 프랑스 말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어느집 문앞 계단에 앉아 간식을 먹으면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이 장관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어둠이 내리면서 비추는 둥근 달빛이 너무나 밝고 황홀했다. 환한 달빛이 낭만적이기까지 한,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11월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였다. 겁도 없이 이대로 피레네를 넘자고 언니와 의기투합했다. 달빛을 받으며 피레네를 넘는 길, 달빛이 환하게 앞을 비추어주며 지나온 길도 음미하게 해주고, 자주 나타나는 가느다란 폭포 줄기, 양쪽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산맥줄기, 꿈에서도 있을 것 같지 않은 고요와 정적의 절정이었다. 역사 속의 그 유명한 피레네 산맥을 넘고 있는 이 순간, 계속 이어지는 힘든 오르막길을 우리는 자매들만이 통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이야기하며 여고생 같은 기분이 되어 걸었다.

몇 시간을 쉬며 걸으며 높은 고지에 오르자 정말 거짓말처럼 별안간 거센 바람이 불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온이 뚝 떨어지며 추워졌다. 서둘러 판초비옷을 입다가 떨어뜨린 지팡이가 강한 바람에 굴러 내려갔다. 온몸이 떨리기 시작하는데 그제서야 이 무모함에 아뿔사, 무모함이 지나쳐 무식이 용기를 부른다더니…. 어느 순례자가 피레네를 오르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도 여기서 얼어 죽는 것 아닐까…. 추위와 공포심이 극에 달했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얼마를 더 가야 마을이 나타날지도 알 수 없었다. 거센 바람과 굵어진 빗방울에 걸음은 느려지고 달빛마저 사라지니 길만 겨우 보이고 온 주위가 깜깜했다. 동물의 울음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무들이 하나같이 괴물처럼 보였다. 추위에 턱이 덜덜 떨렸다. 정말 무섭다는 생각 중에도 이대로 가다 병을 얻어 순례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 산중에서 둘 중에 하나라도 낙오되면 큰일이므로 우리는 서로를 부축하고 격려하며 칠흑 같은 어두운 빗속을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멈추지 않고 걸었다.

얼마나 갔을까 눈앞에 작은 성당이 나타났다. 비를 피하려고 추녀 밑에 판초비옷을 깔고 앉았으나 들이치는 빗줄기와 바람에 온몸이 더욱더 사시나무 떨듯 떨리면서 다물어지지 않는 이들이 딱딱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움직여야 살겠구나…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득하게 마을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워지는 것 같지도 않은 불빛을 따라 죽을 힘을 다해 내려오니 희끄무레하게 건물들이 보였다. 살았구나. 너무 반가운 나머지 눈물이 나왔다. 내 체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천만다행으로 우리는 쓰러지지 않고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 도착해서 마을 입구 바로 옆에 있는 크나큰 알베르게에 기적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천국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몇몇 순례자들이 거의 실신 상태로 비에 흠뻑 젖은 우리를 보고 놀라서 담요를 둘러주고 따뜻한 차를 갖다 주었다. 특히 순례의 길을 걸으며 같은 순례자를 도와주는 자원 봉사자(Hospitaller)의 따뜻한 도움이 정말 고마웠다. 그들은 우리의 무모함에 어안이 벙벙한 눈치들이었다. 차를 마신 후 언니와 나는 샤워실로 들어가 두려움과 추위로 경련을 일으킬 것 같은 몸을 뜨거운 물로 한참 녹이며 극한 상황까지 간 몸을 천천히 달래고 달랬다.

 옛날 병원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는 이 알베르게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며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무척 크고 깨끗한 건물이었다. 비수기라 그런지 침대가 많이 비어 있었다. 난방도 잘 되어 있었고 시설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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