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분들 이야기 제1편 김진숙(로사) 자매님 산티아고 가는길

제1편

2006년 어느 날, 남편이 인터넷에 실린 Camino de Santiago(산티 아고 가는 길, 순례길)에 대한 글을 프린트하여 나에게 읽어보라고 건네 주 었다. 내 기억으로 그당시엔 몇십 명 안팎의 한국 사람이 이 순례길을 걸 었던 것으로 보아 순례길에 관해서 한국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글로는 처 음이었을 글을 무심히 받아 들었다.

그런데 그 글을 읽고 나서 계속 그 길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 록 일생에 한 번은 걸어 보아야 할 길이라는 생각 이 들었다. 어쩐지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던 것 같은 이 길을 진정 가보고 싶었다. 날이 갈수 록 점점 더 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하지만 아무리 가고 싶다 해도 800여 km를 걸어야 하는데 정신적 육 체적 조건이 맞지 않으면 엄두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변함 없이 가고 싶은 의지와 젊은 시절 오랫동안 등산한 경험도 있고 정원일을 좋아해 땅을 파고 가꾸며 다져져 체력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어 쩌면 가고 싶은 열망에 나이 등 문제가 되는 요소들은 억지로 생각해 내 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그렇게 먼 거리를 걷는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지만 무척 관심 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여러 이유로 갈  수가 없었고 그 길을 혼자 간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항상 마음속에서 그 길을 걷고 싶 은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워싱턴 D.C.에 사는 언니가 동 행하기로 하여 걱정하는 남편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언니의 형편으 로 첫 번째는 짧게 보름으로 계획했다. 2011년 11월 첫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후, 순례길을 걷고 온 여러 사람들이 느꼈던 대로 이 길이 끌어당 기는 매력 때문에 다시 2012년 10월 나머지 길을 혼자 걸을 수  있었다.

성 야고보 대성당 Santiago de Compostela

Santiago de Compostela 성 야고보 대성당은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 아 지방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성 야고보(Santiago)의 유골이 안치된 곳이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 말이다. 이 성당은 11세기 말에서 12세기 후반에 다시 스페인의 대표적인 바로크 건축 양식으로 증축되었으며 정면 현관에 있는 조각을 보호하기 위해 18세기 중엽에 성당 전체를 새로운 건물로 둘러쌌다. 9세 기경 발견된 성 야고보의 묘 위에 먼저 교회가 지어졌고 그 후 여러 차례 의 증축, 개축을 통해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대 성당이 탄생되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북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어 유럽의 끝이라고 할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 는 성 야고보의 묘소 때문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 Camino de Santiago

예수 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성 야고보는 예수 님이 십자가에 처형 당한 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스페인의 북부 갈리시아 지 방까지 걸어갔다. 그는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갔으나 예루살렘에서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게 처형당하므로 예수 님의 열두 제자 중에 첫 번 째 순교자가 되었다. 그의 두 제자들은 성 야고보의 시신을 사공도 닻도 없는 돌배에 태워 바다로 흘려 보냈는데 놀랍게도 그 배는 거센 파도에 밀려서 그의 선교지였던 이베리아 반도 끝 갈리시아 해변에 도착했다. 그 의 시신은 제자들에 의해 리브레돈(Libredon)이라는 산에 묻히고 시간 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특히 5세기 서고 트족과 8세기 이슬람의 침입과 전란을 겪으면서 그의 무덤은 소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9세기경  도승 펠 라요(Pelayo)가 별빛을 따라 간 들판에서 한 구의 유골을 발견했는데 그 유골이 주교와 왕 으로부터 성 야고보의 유해라는 사실이 공식 적으로 확인되면서 이 기적적인 사건은 유럽 전역으로 펴져나갔다. 

순례자 표시인 조개껍질의 유래

생장피드포르에서 콤포스텔라까지 파란 바탕에 노란색의 조개껍질이 그려진 문양과 노란 화살표가 순례자들을 안내한다. 순례자들은 그 표시 만 따라가면 된다. 조개껍질의 부채살 모양은 다양한 통로를 통하여 한 곳으로 모인다는 의미가 있다. 또 옛 순례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나 물을 마실 때 조개껍질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조개껍질이 성 야고보와 관련을 맺게 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 이 있다.

돌로 만든 배가 성 야고보의 유해를 싣고 갈리시아 해변에 도착했을 때 그곳 해안가에서는 이교도의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말을 타고 해변으로 달려가던 신랑은 돌로 만든 배를 보고 놀란 말이 물로 뛰어 들면서 말과 함께 휩쓸려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 야고보의 은총으로 신 랑은 기적적으로 물 위로 떠올랐고 그가 파도를 헤치고 나올 때 조개껍질 이 온몸에 붙어 있었다. 그때부터 조개껍질이 순례자를 지켜주는 수 호성 인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또 산티아고에 도착한 성인 야고보의 시신 이 조개껍질로 덮여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2011년 11월 8일 화요일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하니 8일 아침 9시 15분이었다. 프랑스가 샬롯 보다 5시간 빠르니 8시간 정도 걸린 셈이었다. 공항 앞에서 10시 20분 에 몽파르나스(Monparnasse)가는 버스를 타고 중앙역인 몽파르나스 역 에 내리니 11시 45분. 그곳에서 85유로를 주고 바욘(Bayonne)가는 TGV 기차표를 예매했다. 출발은 오후 3시 45분이었다.

파리 시내에서 가까운 몽파르나스는 옛날 젊은 예술인들의 거리와 타 워가 유명한 곳이다. 기차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근처를 둘러보고 싶 었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날씨가 춥고 음산하여 카페를 찾아 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확성기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 어 물었더니 임금 인상 데모라고 했다. 어느 나라건 사람 사는 것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 점심 식사를 했더니 36유로나 나왔다. 유럽의 높은 물가를 실감할   있었다.

오후 3시 45분. TGV로 출발하여 바욘 역에 내리니 밤 8시 50분이었 다. 기차도 버스도 끊긴 상태이고 노조들의 파업으로 내일도 정상적인 운 행을 못할 것 같다고 역원이 알려주었다. 우리 스케줄대로는 오늘 밤으 로 순례의 길을 시작하는 생장피드포르까지 가야 했다. 할   없이 택시를 불러 요금을 알아보니 110유로를 불렀다. 간신히 깎아 85유로를 주 고 한 시간여 만에 프랑스 남쪽 끝에 있는 마을 생장피드포르에 도착해 막 문을 닫으려고 하는 알베르게(Albergue, Refuge)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침 식사 포함해서 7유로를 받는 곳이었다.

알베르게는 순례자  소로 카미노를 걷는 사람만 묵을 수  있고 ‘First come, first serve’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와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알베르게, 그리고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알베르 게가 있다. 여러 명이 함께 쓰게 되어 있으며 2층짜리 침대와 샤워실이 있다. 공립 알베르게는 기본적인 취사도구가 설비되어 있는 부엌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밤 10시면 무조건 불을 끄고 정문을 잠가버린다.

순례자들은 순례 증명서인 크레덴시알(Credencial)을 꼭 소지하게 되어 있어서 첫 알베르게인 이곳에서 크레덴시알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너 무 늦어 내일 아침에 받기로 하였다. 언니와 나는 각각 위층 침대를 배정 받고 방으로 들어갔다. 컴컴하고 좁은 방에 한 순례자가 희미한 손전등 을 켜고 책을 읽고 있었다. 천천히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순례자들은 침 낭을 덮고 자고 있었고 바닥에는 큼지막한 배낭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 어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였다. 침대와 침대 사이도 겨우 한 사람 지나다 닐 정도로 좁았다. 알베르게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나 정 말 낯선 분위기였다.

한쪽에 비스듬히 놓여 있는 사다리를 조심스럽게 올라가 침대에 누웠 다. 난간이 없고 좁은 공간에 누우니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좀처럼 잠을 이룰수  가 없었다. 거기다 한 번은 화장실을 가 기 위해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사다리를 내려오다 마지막 한 칸을 헛디뎌 비명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몇 순례자들이 일어나 손전등을 비추 며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들의 단잠을 깨워놓았으니…. 너무 미안해 밖 의 식당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다시 침대로 올라가 거의 뜬 눈으로 첫밤 을 보내야 했다.         

사진 김진숙 로사 자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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