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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성령쇄신 체험

가톨릭의 성령쇄신 체험


가톨릭 교회의 많은 신앙 쇄신(renewals) 중의 하나인 성령쇄신은 1967년에 Duquesne 대학에서 몇명의 학생들과 신학교수들이 주말 피정을 갖는 중에 시작 되었습니다. 이렇게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시작이었으나 1990년에 이르러서는 세계적으로 7천 2백만이 넘는 신자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천 5백만명) 지금 전세계적으로 120개의 나라에 공인된 조직이 있습니다. 이 쇄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황 요한 23세의 기도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많은 분들이 믿고 있습니다. 그 기도는, “오 성령이시여, … 당신의 선물들을 풍성히 베푸시어 … 오늘 우리의 이 시대에 새로운 성령강림절(Pentecost)로써 당신의 경이로우심를 새롭게 하소서.” 이었습니다.

 

가톨릭 성령쇄신 운동은 고린토 전서 12장에 나오는 은사들의 쇄신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개인의 서약을 새롭게 하는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서약은 교회의 역사에서 모든 진정한 쇄신의 중심이 되어 왔습니다. 이 서약은 성령님께서 다시 기름 바르심으로써 시작합니다. 이것은 때로 “성령세례”라고도 불리워집니다. 이것은 개개인들이 성령을 주시는 장본인이신 예수그리스도께 자신들의 가슴속에 성령의 선물을 드러내 주십사고 청할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바오로 성인이 디모테오에게 권고하기를, “나는 다시 그대를 깨우쳐 줍니다. 내가 그대에게 안수했을 때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그 은총의 선물을 생생하게 간직하시오.” (II 디모테오 1:6)

 

이 것은 주로 세례와 견진 성사를 통해 받은 선물들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은사들의 수여와 더불어, 성령쇄신을 체험한 이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더욱 새롭고 깊은 개인적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들은 기도에서 새로운 힘을, 성서에서 새로운 사랑을, 그리고 교회와 예식과 성사에대한 새롭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은사적 쇄신의 특징들은 교황 바오로 6세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하여금, 신자들과 성직자들이 성령쇄신에 참여하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승인은 1975년에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서 처음으로 그리고 극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분은 직접 성령쇄신의 연중 대회(conference)를 로마에서 개최하도록 초대했습니다. 그 대회중의 특별강연에서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날로 더욱이 세속화 되어 가고 있는 시대에, 세계 어느곳 어느 환경에서도 역사하고 계시는 성령님을 보게 되는, 성령쇄신보다 필수적인 것은 없습니다. … 그러니 이 성령쇄신이 교회와 세계를 위해서 어찌 중요한 기회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유지시키기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교황 바오로 6세를 뒤이어, 은사수행을 하는 단체들을 만났고, 그런 만남의 자리에서 이와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부어주고자 하시는 선물들을 받을수 있도록 항구적이고 감사하는 이의 자세를 견지하십시오.”

 

이 러한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지도에 힘입어, 미국, 캐나다, 그리고 남미와 유럽의 주교들은 성령쇄신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사목서한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주교들은 1984년에, 미국 교회 성령 쇄신을 위한 사목서한에서 이와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 … 은사적 쇄신은 복음증거의 전통에 입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시는 성령께 힘입어,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은 사적 쇄신이 이 복음의 최우선의 진리를 견지한다면, 그것은 핵심적인 (선택적인 것이 아님) 복음의 요소들을, 즉, 하느님 아버지의 약속된 사랑,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 성령과 성사와 공동체의 힘, 기도, 은사, 그리고 선교의 필요성들을, 증거하는 것이 됩니다.

 

이 쇄신이 복음의 지속적인 진리의 핵심을 고수하는 한, 교회의 생명에 부수적인 것으로 제외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성령쇄신은 교회 내에서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쇄신은 교회의 심장부에 위치하는 것이기때문에 교구의 쇄신을 위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Yves Congar의 말처럼, “성령쇄신은 교회를 위한 은총입니다.”라는 견해를 성령쇄신에 참여하는 분들이 아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성령쇄신이 미국 주교단의 지원을 받을 것을 확신하며, 그 봉사자 여러분들이 교회의 쇄신을 위해 노력하시기를 격려하는 바입니다.

 

아마도 은사에 관한 몇몇 이야기들은 명령인 것도 같습니다.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이렇게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성 령님께서 하느님의 백성들을 성화하시고 이끄시는 것은 성사와 교회 사목을 통해서만이 아닙니다. 그 분은 모든 다른 수준의 신자들에게 특별한 은총을 나누어 주십니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공동 이익을 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고리토전서 12:7)이 모든 성령의 은사들은 그 것이 훌륭한 것이든 단순한 것이든, 감사와 위안으로써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것이 교회에 매우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L.G. 12)

 

그러므로 모든 은사들은, 그것이 초자연적이든 아니든,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들은 하느님의 몸인 교회를 이루게 하고, 성령께서는 각자가 원하는대로 그 선물들을 골고루 나누어 주십니다. (고리토전서 12:11) 그러므로, 그것들이 어느 개인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성령의 선물은 사도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번째 편지에서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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